목회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며, 아픈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고 어려움에 놓인 이들에게 믿음의 말을 건넨다.
그러나 한완규 목사는 자신의 신앙 에세이 《자라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를 마무리하며 조금 다른 고백을 남겼다.
“나는 말씀을 전하러 갔다가 그들의 삶 앞에서 말씀을 다시 들었다.”
이 문장은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저자는 병실과 식탁, 예배당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오랫동안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은 사람,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맡은 일을 묵묵히 감당한 사람, 상처를 받은 뒤에도 상처의 말을 닮지 않으려고 애쓴 사람, 오래 지켜 온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고 조용히 물러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강한 믿음을 보여 준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치고 서운한 날이 있었고, 같은 문제 앞에서 다시 흔들리기도 했다. 오래 기도한 일이 원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간도 지나야 했다. 하지만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마음이 다 풀리지 않은 날에도 누군가의 손을 놓지 않았고, 확신에 찬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있어야 할 자리를 지켰다.
한 목사는 바로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목회자로 살아오면서 사람을 오래 바라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오래 바라본 것과 오래 판단한 것을 혼동한 적도 많았습니다. 같은 문제로 다시 힘들어하면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했고,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으면 그동안의 기다림이 헛된 것처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가 책에서 말하는 성장은 눈에 띄는 성취와는 조금 다르다.
예전 같으면 오래 서운해했을 일을 조금 일찍 놓는 것, 자기와 다른 말을 들었을 때 곧바로 맞서지 않는 것, 자기 말을 앞세우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듣는 것과 같은 변화다.
한 목사는 책에서 이러한 변화가 “주보에 싣기 어렵고 사진으로 남기기도 어렵다”고 적는다. 그러나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전보다 조금 달라졌다면, 그 안에서 이미 보이지 않는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 제목은 왜 《자라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일까.
한 목사는 사람의 변화가 대개 한순간에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같은 상황을 다시 만났을 때 예전과 조금 다르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무엇인가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변화가 시작된 순간보다 우리가 알아보는 순간이 훨씬 늦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시선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데에도 적용된다.
한 목사는 책을 쓰면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 자신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됐다고 고백한다.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고 쓰면서도 자신은 조급했고,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그 사람이 말을 마치기 전에 자신의 대답을 준비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목회의 역할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한다.
“사람을 세운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너무 빨리 세우려고 하면 아직 앉아 있어야 할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재촉할 수도 있습니다.”
《자라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의 첫 글 가운데 하나인 〈믿음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도 저자는 같은 문제를 다룬다.
지친 사람에게 곧바로 힘을 내라고 말하고, 불안한 사람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감사할 이유를 찾아 주는 것이 언제나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날에는 답보다 먼저 아무 말 없이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과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기도하면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결과가 보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다.
책에서 그는 소망을 “원하는 결과를 미리 손에 쥐는 일”로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남으신다는 데 삶의 무게를 맡기는 것이 소망이라고 말한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다.
한 목사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것도 거창한 결론은 아니다.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너무 빨리 실패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까운 사람의 현재 모습을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으로 결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교회도 숫자와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사람의 믿음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자신도 여전히 아는 대로 살지 못하고, 기다려야 할 자리에서 서두르며, 다른 사람에게는 넉넉하지 못하면서 자신에게는 쉽게 이유를 붙일 때가 있다고.
그러면서도 전보다 한 사람의 말을 조금 더 오래 들으려 하고, 한 번의 모습으로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고 적는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더욱 담백하다.
“나도 아직 배우는 중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고, 오래 믿은 사람도 다시 묻는다.
그리고 어쩌면 믿음의 성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아직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리,
사람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는 자리,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결론 내리지 않는 자리에서 말이다.




















